Everlasting and undying love, including family, platonic, and romantic bonds
Pureness and freedom from outside influences or corruptio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in Christian faith
Innocence
Newborn babies of either gender
Reconnecting with lost loves or disconnected family members
Self discipline and the ability to stay focused on love.
(www.flowermeaning.com)
나는 나의 순수함을, 새로움을, 순결함을, 잃었음에 분노했다. 스러져가고 흐릿해지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깨끗함이 그리워 그렇게나 울고, 괴로워하고, 또 울었다. 아이같이 웃고, 순진무구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모습이 더이상 그려지지 않아 하염없이 두려워했다. 그런 내 마음은 갈피를 못잡고 작은 골방에서 숨죽여 누군가의 얼굴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원했다. 모든것이 후회가 되고, 모든것이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을것 같은 좌절감은 얇디 얇은 내 목을 꺾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분노와 화는 내 앞의 보이는 작은 대상에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 모든 허탈감과 돌이킬수 없는 기억들에 대한 분풀이였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되찾지 못할지라도, 그 후회에 대한 서러움이라도 토해내주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한 내 모습들이라도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숨이 다시 막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겁했다.
The anger, pure irritation towards my lost of innocence- the innocence that has been created in my since hundred million years ago. The pure heart of mine that I could love like life, the clean heart of mine that I could live without scars. I wept for myself as I lost direction of retrieving that heart back again. Not because of just simple relationship, but because of the simple roots of the dark, deep, sins, that unendingly corrupted my adoration of the person, myself, and the God. The only way I could reach out to drag myself out of the pit was to cry, weep, and cry again in the room that no one could enter. And that was when I started to permit myself to be angry. To just be sad and fiesty, because I was hurt. The only thing I could do then was to fight against all those sins, those scars, so I can live again.
발버둥쳤다. 아프기 위해, 화를 내기 위해, 나를 위해 슬퍼하기 위해, 온갖 힘을 쓰는것이 기쁘고 행복하기 위함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이 소비가 됨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해 웃기보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자는 몇이나 될까. 지푸라기를 부여잡듯이 내 마지막 마음들을 쏟아낼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내가 늘 할 수 있었던 단 한가지는, 내 마음을 보아주는것이며, 공감해주는 것이며, 들어주는 것, 그것이 다였다는 것을.
The timeless times past- the moments that I had to be angry and sad for myself. Beyond being positive, okay, for myself, it was another level of perspective to get as I learned to cry for myself. It was such a vulnerable, pure, almost embarrassing moment that I would never imagined that would be a method to empathize for myself, ever again.
나의 공감의 시간이 점점 옅어질 때 즈음, 멜로디가 태어났다. 생명이 잉태되고, 그것이 피어남을 목격하는것은 내 마음에, 내 영혼에, 먹먹한 울림을 주었다. 멜로디, 노래 한 자락처럼, 내 슬픔과 후회 뒤에 올 수 있는건 조그맣게 흥얼거릴수 있는 생명의 한소절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힘을 동반한다는 것을. 영혼이 하염없이 무너질 때, 모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순수함을 얻기 위해 나는 순수함을 잃었고,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해 나는 무지막지 하게 후회를 했다. 좌석의 양극처럼 고통은 몰래 그의 뒷면에 회복이라는것을 숨기고 내게 찾아온것이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 나는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하듯이 끙끙 거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끝에, 나는 땅이 아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The time was perfect when my niece was born. She was called Melody. And it was right about the perfect time when I was almost becoming healed through my empathy. It was powerful. The fact I could be a witness to a life and a soul that had been conceived for almost a year methaphored my own time of desperation. Almost a year. I realized there was a non-comparable power in that; a simple, life. Just life. And it didn’t take too long that the opposites come together. So ironic. The pain, came to me as he was hiding such restoration on the back of him, grinning suspiciously to me. Never knew, until I eagerly tried to turn everything inside out. Finally I was able to confront and see- with my heart beyond eyes- me.
나는 사랑을 놓고 미움을 택하려고 했고, 평강이 아닌 불화를 택하려고 했다. 바리새인같은 나의 모습들을 빛 아래에 다 까발리기를 원했기에 나는 더 처참해지려고 용기를 냈다. 그러한 내 모습들을 보아야 내가 역설적이게도 더 숨을 쉴수 있을것 같았다. 늘 웃고, 괜찮다, 라며 참아내온 세월들이 야속할 만큼 나는 눈에 핏줄을 세우고 싸우러 나가듯 돌진했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내가 싸우는 대상들은 보이는 것들이 절대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 화살은 돌고 돌아 내 안에 있는 뿌리 깊은 죄에 대한 반격이었다. 이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옛것을 뒤집어 쓰고 열심히 내 안을 정복하려는 나는 일깨워지기 싫어 그렇게도 다른 누군가에게 과녁을 돌리기 시작한것인지도 모른다. 옛것과 세상의 먼지를 쓴 나는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콱 막히는 먼지 더미에서 숨쉬지 못하고 있는 나를 울도록, 소리지르도록, 하는 것은 참 고된 일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미움을 택해본 나는, 결국 사랑으로 돌아왔다. 불화를 택했던 나는, 결국 평화와 평강으로 돌아왔음을. 이것은 내 선택도,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드디어 피어난 것들이었다. 생명이었다.
It was for the first time ever, I chose hate. I chose war. Peace and love was not something I could pretend anymore. I knew I had lived like pharisee; everything was loving, perfect, and okay. That kind of masked thoughts and actions were suffocating me for the longest time. And I knew, that it was a time to see. Time for me to see the roots of those. And it was so simple. Those were never caused by a person. Those were never formed by an existence that was tangible. It was a war above the skies. The fight between the spirits. The unseen. And it ran a cycle, the cycle that seemed like it will never end- and it ended right inside me. The sin rooted right deep in me. Yes, it was a fact that never wanted to confirm. It was hard, because, it meant I had to accept the sin inside them. The root that never rots only through the blood and she baptism of spirit. It was a moment of equalization- that you and I are the same- no one’s fault, no one’s regret.
Self discipline and the ability to stay focused on love.
결국 돌아온 곳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사랑의 보금자리였다. 내게 잉태되었던 그 모든 쓰라림과 눈물들은 사랑이라는 생명을 위한 양수와 같은것들이 아니었을까. 민우목사님을 처음 이 곳에 와서 만났을 때, 나는 어떠한 진통을 겪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진통 뒤 내게 또 다시 피어난 사랑은 전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나 자신 스스로에게,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까맣게 변해버린 재가 화관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기도할 수 있었던 나는 내가 아닌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내 안에 생명으로 계신 그 다른 누군가임을 나는 확신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을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누군가처럼, 상처받아 마음을 닫아버리고, 가시를 돋치고, 거리를 두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나도. 런던에서 작품의 고뇌에서 힘겨워하고 있을 때에 나는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 기도는 단 한 번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나는 다시 한번 묵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원한다. 사랑하려고. 다시, 사랑을 하려고.
And I came back. It wasn’t a place of scars, nor a place of reflection. Everything went past. And it was the place of love. I made the long cycle again, this time a bit longer, and came back to love again. The pain, hurt, the lies and the tears were simply the ambryo’s fluid to conceive the beautiful life. Few months ago I was described by a pastor as I was going through the contraction, back then not knowing how and where the pain came from. Such a memorable saying that anybody said to me; now I could say, the self who went through all that labor was not myself. It was the one who lives inside me, in the name of “life,” and “salvation.” I could not have done to walk through the valleys of darkness, I would’ve just shut down and made distance as anybody will do. I remember back again the moment in London when I prayed in the midst of my creation pains; I prayed to receive the gift of love. The gift that is above all other gifts. I was young and brave to ask for that. I wanted to encourage and heal people. And I still know, that the prayer was never, ever forgotten. And here I am again, at the place of love. So I will love again. To do that all over again. To love.